세상을 바꿀 왕을 만들어드립니다 [영화: 킹메이커]
이 영화는 실존 인물에게서 영감을 얻었지만, 허구다라는 문구가 영화 초반에 등장한다. 1960-70년대 극적인 선거과정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실제를 바탕으로 했지만, 세부적인 내용과 인물은 허구 사실이다. 영화의 등장인물인 김운범과 서창대는 실존인물인 김대중과 엄창록을 모티브로 한 정치영 화이다. '선거판의 여우'라고 불렸던 엄창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거 참모였다.
우선 이겨야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서창대는 북한 출신으로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엄창록 역시 함경북도 출신이며 강원도에서 한약재 상으로 살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로서 활동하게 된다. 영화 속 서창대는 '빨갱이'라는 비판을 받는 현실을 바꾸고 싶어 한다. 서창대는 김운범에게 편지를 보낸다. 자신이 전략적인 수단을 활용해 정치판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한다. 김운범은 이미 여러 차례 낙선을 한 상황이었다. 이 영화는 김운범이 서창대와 함께 하면서, 1961년 재보궐선거, 1963년 재선거, 1970년 신민당 대선후보까지 거머쥐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에서 다뤄진 첫 선거에서는 서창대가 박정희 권력이 돈을 푸는 패턴을 이해하고 역이용한다. 예를 들어, 상대 정당에서 입었던 옷을 입고 전날 주민들에게 준 셔츠를 돌려달라고 하거나, 무례한 상황을 연출하는 등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전략을 세웠다. 작지만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의 심리는 변화해간다. 서창대는 김운범을 통해 자신이 겪었던 불합리한 사회를 바꿔보고자 한다. 무조건 김운범을 승리하게끔 싸움을 주도해나간다.
빛과 그림자 vs 김운범과 서창대
기발하지만 다소 불편한 선거전략을 내놓은 서창대를 통해 김운범은 대선후보로 출마할 기회까지 얻게 된다. 다만 김운범은 공식적으로 서창대를 가까이 놓기에는 조심스러웠다. 서창대는 김운범의 그런 태도로 인해 아쉬움이 더 커져갔다. 김운범이 빛을 발하는 만큼 서창대의 어두운 전략과 서창대 자체가 드러나서는 안 되게 되었다. 이 부분을 영화에서는 '빛과 그림자'라는 표현을 썼다. 영화 내내 밝고 어두운 장면을 대조하면서 인물을 비추는 연출을 선보인다. 이런 연출을 보는 것 또한 흥미로우면서 안타까웠다. 계속된 낙선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한 김운범을 서창 대가 도와줌으로써 빛을 보게 되지만, 정작 서창대는 점점 그림자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김운범이 속해있는 정당 안에서도 서창대를 비판하는 세력들이 생겨난다. 그럼에도 서창대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이라고 하면서 무조건 이기기 위해서는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김운범과 서창대는 조금씩 분열이 일어난 거 같다.
무조건 이기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김운범은 어쩌면 순진한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 전략보다는 명분을 추구하는 정치인으로 보인다. 서창대가 없으면 그 명분조차 펼칠 무대를 찾기가 어렵다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결국 김운범은 서창대를 인정하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김운범 자택에 폭발사고가 발생한다. 서창대가 이전에 정치를 위해서는 쇼를 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 발언 탓에 서창대가 용의자로 지목된다. '가장 슬픈 것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것'이라는 내레이션이 영화 초반에 나온다. 서창대는 자신을 의심하는 김운범에게 상처를 받고 그를 떠난다. 이번에는 김운범도 서창대에게 '너는 준비가 안 된 것이 아니다, 그냥 정치를 하면 안 될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렇게 갈라졌다. 뒷 이야기는 서창대가 박정희 정당으로 넘어간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혹을 다루게 된다. 서창대를 통해서 지금까지도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지역감정이 생겨났다고 나온다. 실제로도 1971년 대선을 출발점으로 지역주의 감정이 생겨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서창대는 한국의 문제인 지역주의 감정을 만들어 내면서, 김운범을 패배하게 만든다.
영화는 정치판의 뜨거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정치인의 슬로건, 드라마보다 더 놀라운 반전, 상대의 심리를 움직이는 두뇌 싸움 등 정치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 영화를 통해서 그동안 식어버린 정치의 정서를 뜨겁게 달구고, 우리의 인생에도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나는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자 과정이 더 중요할까? 결과가 더 중요할까? 어떠한 수단을 쓰더라도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고자 하는 게 맞는 걸까라는 의문이 든다.